「법의학의 시선」고종 독살설
"평소 건강하시고 또 병환이란 소식도 없었는데 밤중에 침전에서 창졸하게 붕어하니 이 어찌 범상한 일이겠는가?"
1919년, 1월 21일 새벽, 고종이 급작스럽게 서거한다. 평소 건강했던 고종의 죽음은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격문과 소문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사인은 뇌일혈이라 밝혀졌으나, 조선총독부가 이를 바로 발표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으며, 1월 22일 아침 사망하였다고 속여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의심을 극대화 시켰다.
1919년 1월 24일, 고종의 소렴식, 고종 시신에 대한 풍문이 궁궐 바깥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고종 독살설은 더욱 무게를 싣게 된다.
필자는 고종 독살설을 법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그 진실에 다가가 보려 한다. 하지만 본 해석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묘사에만 의존하였으며, 다른 요소들은 배재하고 진행했음을 미리 알린다.

편안한 모습
고종의 임종을 지킨 여의사, 도가와 긴코는 그가 사망한 뒤의 모습을 '편안한 모습'이라 표현한다. 또한 일본인 관리, 곤도 시로스케는 고종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풍만한 볼, 고운 혈색, 굳게 다문 입술, 당당한 왕자다운 풍채는 생전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이 없고.."라 적었는데 이는 고종의 사망 원인에 대해 분석할 좋은 증거가 된다.
시신의 이완 현상이 '편안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후에 시신은 중추신경 지배가 소실되며 얼굴 근육이 반발력을 잃고 옆으로 퍼지게 된다. 그래서 웃는 듯한, 즉 편안한 표정이 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청장년보다 고령자에게 나타나기 쉬운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개체가 사망하면 신경 자극이 없어지고 즉시 근육이 이완되면서 긴장이 거의 모두 사라진다. 그 후에 사후경직이라는 부분, 전체적으로 경직되는 기간이 있으며, 부패가 시작되며 경직이 풀어진다. 사망 후 이완기는 여러 변수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만약 독살의 경우라면 사망 직후 입과 눈이 열린 상태로 흑자색의 안색과 파란 손톱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팔다리가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고종의 팔다리가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황제의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었고..
사람은 죽은 순간부터 부패가 진행된다. 부패란 부패균이 인체의 복잡한 유기물을 분해하며 단순한 유기화합물로 바꾸는 현상이다. 부패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며 시신은 부풀고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이 분해되어 각종 아미노산, 암모니아 가스, 황화수소들이 발생한다. 여러 장내 세균과 외부서 들어온 부패균으로 유발되는데, 이 부패균이 혈관 안에 있는 혈액을 따라 번식하고, 스스로 만든 가스에 의해 발생하는 압력으로 시체 전체로 진행된다. 이를 사후순환이라 한다.
부패는 충분한 공기가 공급되고,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유지될 때, 지방이 많고 출혈이 없는 급사로 사망한 시체의 경우에 빨리 일어난다. 당시 고종은 뇌일혈 때문에 다소 체온이 상승한 상태였고, 외부 기온은 겨울이었지만 실내에서 사망하고 방치되었다. 또한 153cm의 키와 70kg의 비만 체를 가졌는 등, 부패에 적함한 조건을 다수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 사람이 죽으면 하루 내에 소독을 하고 염을 하지만, 고종의 시신은 사망 후 아무런 조치 없이 4일 정도 방치되었다. 시신은 부패되기 충분한 시간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고종 시신에 나타난 여러 변이들은 부패가 이루어지고 있던 모습을 설명한 것으로 독살을 입증할 결정적 근거는 되지 못한다. 더욱 다양한 각도로 죽음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1] 윤소영 "고종 독살설과 31운동". 내일을 여는 역사, 74, 46-61
[2] 이상한,이숭독, 허기영 외 12인 공저, "시체변화" in 법의학, 2nd ed., Seoul, Republic of Korea: 정문각, 2020년, pp. 35-43
그림1.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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