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사회학] #1.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경제학 2021년 06월 17일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에게 있어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happiness)'이라고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의 근본 규범인 헌법 역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행복 추구권'을 명문화해 보장하고 있다. 행복에 관한 초기 연구는 주로 철학, 심리학과 같은 영역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경제학, 사회정책학에서 역시 행복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는 추세이며, 많은 정부들도 행복의 증진을 사회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관계, 공동체, 사회자본 등 사회의 질적 자원, 혹은 개인의 소득 수준은 삶의 질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내총생산과 이스털린의 역설

세계은행(WB)가 매년 발표하는 국내총생산(GDP)은 한 해 동안 모든 가구에서 구매한 재화와 서비스의 총합을 나타내며, 이는 전통적으로 어떤 국가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간주되어 왔다. 소득 증가는 삶에 대한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경제학에서 줄곧 강조되었기에  국가의 부(富)와 명성을 나타내어 국민의 삶의 질을 보여줄 수 있는 GDP가 행복에 관한 경제학적 접근법의 대표적 척도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국내총생산의 측정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필링(David Pilling)은 책 <만들어진 성장>에서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행복에 있어 정말 중요한 공공서비스를 위한 지출, 환경오염, 불평등과 같은 요소들이오히려 경제 성장의 통계 밖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자원의 과도한 파괴로 만들어진 생산물과 이윤은 경제 통계 지수에 반영되지만 그로 인한 자연의 오염 정도는 간과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총생산은 경제 수준만을 나타내는 지표로서는 유용할 수 있지만,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사회 요소들도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국민의 주관적인 행복을 측정하는 도구로서는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행복감과 국내총생산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한 또다른 학자가 있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소득과 행복의 연관성을 조사한 1974년의 논문에서, 일정 시점에서 분석(cross-section analysis)해보면 소득이 높은 사람은 소득이 낮은 사람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 반면에, 시계열적 분석(time-series analysis)을 해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이후에는 소득 수준이 증가해도 행복의 증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거나, 매우 미미한 수준의 증가율을 보임을 주장했다. 이와 같이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단층적인 분석과 시계열적 분석 간에 상반된 결과를 보이는 현상을 ‘이스털린 역설(The Easterlin Paradox)'이라고 부른다. 즉 소득이 계속 증가하더라도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도는 더 이상 그에 비례하여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털린 역설의 현상은 미국뿐만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득 수준이 급상승한 일본과 유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으며 행복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의 효시로서 경제학계에서 '행복'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털린의 역설 - 미국의 1인당 실질 소득과 행복의 정도

로널드 잉글하트, '조용한 혁명'

행복과 1인당 국내총생산

미국 미시건 대학의 사회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eart)는 GDP와 삶의 만족도 간의 관계를 분석하며, 오늘날 선진국은 물질적 소비와 안전에 대한 강조에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소득만을 강조하는 풍조를 벗어나 탈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기 시작하는 변화의 과정을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이라고 칭한다. 물론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는 경제 수준과 같은 객관적 지표가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하지만, 최소한의 경제 · 신체적 안전이 보장된 이후에는 인간의 사랑과 존경, 그 다음에는 지적, 심미적 만족에 대한 욕구가 점차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주장한 '욕구 단계론'과도 공통점을 가진다.


행복의 충분조건과 필요조건

그러면 소득 수준과 삶의 질은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연구에 따르면 한 국가에서 국내총생산과 다른 지표의 순위는 대부분 비슷한데, 이는 결국 국내총생산이 높을수록 다른 사회적 지표도 긍정적 양상을 보임을 보여준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사회적 평등 수준, 사회적 관용, 사회 복지에 대한 지지, 정치적 자유의 보장, 국민들의 건강 수준과 같은 면에서 뛰어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돈은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전제되어야 하는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2편에서는 행복을 측정하는 다양한 방법들과 그 통계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참고 문헌

[1]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행복 - 아리스토텔레스 [Online]. Available: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1978&docId=800929&categoryId=41982

[2] 김윤태, "행복지수와 사회학적 접근법: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움 논문집, pp. 75-90, Sep, 2009.

[3] 이콘출판, (2019, December 19).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_<만들어진 성장>[Online]. Available: http://naver.me/5giUIaFH

[4] 문진영, "이스털린 역설에 대한 연구: 만족점의 존재여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학, vol. 64, no. 1, pp. 53-77, Feb, 2012.

그림 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6774&docId=2847477&categoryId=56774

그림 2.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239006

Cover Image. https://unsplash.com/photos/meRxve4Cz2o

김하원

하나고등학교 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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