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rics, 그 안의 미학적 가치
힙합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3가지를 뽑으라면, 라임(Rhyme), 플로우(Flow), 펀치라인(Punch-Line)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간, 즉 위 3가지 요소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바로 가사(Lyrics)다. 다시 말해, 힙합 음악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청각적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가사의 질을 잘 생각하여야 한다.
단순히 청각적으로 즐거운 것을 떠나 곡의 짜임새 서사성을 중요시하는 현대 힙합 문화에서 가사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되어버렸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포토 슛 미러가 없는 이 카메라 코딱지 파다가 나왔다" - sokodomo, <거울> 中
해당 가사는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뜬금없는 가사이다. 애초에 해당 곡을 같이 부른 Untell과 함께 경연곡으로써의 청각적 쾌감은 살렸지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가사로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문학 작품 '거울'을 주제로 한 곡이었기 때문에 깊은 가사를 기대한 리스너들은 더욱 아숴워했다.
이러한 좋지 않은 예시가 있는가 하면, 국내 올드 스쿨(Old Skool)의 거장, P-TYPE의 곡들과 같이 좋은 예시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바보처럼 서러워도 걸어야 할 길이었다고 그리 해야만 했다고" - P-TYPE, <돈키호테> 中
P-TYPE은 한국 힙합의 거장으로, 아직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힙합 문화를 자리잡게 해준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지금과는 달리 '정신 없는 음악', '아웃사이더 문화'라 여겨졌던 힙합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이기에 자신의 1집 <Heavy Bass>의 3번 트랙 <돈키호테>를 통해 한 명의 선구자이자 외로운 길을 걸어야만 했던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리스너들에게 드러내었다. 이러한 빼어난 서사성은 힙합 음악의 미학적 가치를 더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P-TYPE이 대단한 OG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더 있다. 버벌진트와 함께 힙합의 3요소 중 하나인 '라임'을 정립한 한국 라임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UMC가 주장해왔던 '한국 힙합에서 라임의 정립은 불가능하다'라는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마주쳐 깨부쉈기 때문이다.
"불한당가, 불안감과 억울한 밤 따위 금한다 따분한 감각들 아까운가? 그맘 다 안다, 그만 간봐" - P-TYPE, <불한당가> 中
실제 가사를 보지 않은 채로 해당 곡을 감상한다면, '불한당가'라는 단어만 들릴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곡으로는 한국 힙합 역대 최고의 단체곡, '동전 한 닢 remix'의 화나가 쓴 벌스가 있다.
"힙합이 이 땅 위 자리 잡기까지 차디찬 시각이란 비탈길과 실랑이
괄시나 심한 비난, 이간질 딴지 사이 만신창이 삭신 난 이 바위 앞의 가위
하지만 피하지 마 시작이 반이야 단지 mic와 피 땀이 확실한 실마리
가시밭길과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 뒤 야심찬 희망이 날 기다린다니까" - 화나, <동전 한 닢 remix> 中
해당 벌스는 모음 'ㅣ'와 'ㅏ'만으로 구성되어있다(mic=마잌/싸움=쌈). 벌스가 공개된 직후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벌스'라는 극찬이 떠돌았다. 이와 같이 라임도 가사의 미학적 가치를 돋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3요소 중 마지막을 담당하고 있는 펀치라인은 다른 두 요소에 비해 판단하기 쉽지 않다. 서사성은 시각으로, 라임은 청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반면에 펀치라인은 개념에 대한 이해와 순간 판단력을 갖추어야 제대로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펀치라인이 되려면 불특정 다수의 청자가 듣자마자 곧바로 이해할 수 있거나 리스너 집단이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사가 필요하다.
"Rap Battle도 못해본 놈들이 쓰는 Battle Rap 난 프리스타일로 해도 것보단 '두 배'로 해 넌 용돈 벌고 싶으면 '세배'는 해야지 보여줄 장기가 없으면 '네 배'를 째" - 올티, <OLL' READY> 中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알잖아 안양고 내 학번은 31035 '전학을 갔다온건가..' 헷갈려봤어? '관양중' 출신 놈이 지금 '부흥중'이라서" - 올티, <Town> 中
이러한 점에서 올티는 가히 현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펀치라인을 잘 이용하는 래퍼라 평할 수 있다. 18세의 나이로 쇼미더머니 3 본선 경연곡으로 사용한 <OLL' READY>는 곡 전체가 펀치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펀치라인으로 범벅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리스너들을 자극했던건 위에 소개한 '두 배, 세 배, 네 배'라인이다. 중의적 표현을 가진 '세배'와 '네 배'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쉬우면서도 큰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Town>의 경우 자신의 출신인 '관양중'과 옆 학교인 '부흥중'을 이용하여 펀치라인을 구성했다. 자신의 출신을 헷갈려하는 친구에게 '관양중'에서 '부흥중'으로 옮겼다는 가사인데, 진짜 옆 학교로 옮겼다는 의미와 래퍼로서 자신이 '부흥하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를 참신하게 섞어낸 라인이다.
최근 트렌드가 붐뱁에서 트랩, 싱잉랩, EMO 힙합 쪽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생기고, 이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사의 중요성이 덜 중시되는 추세가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곡의 필수 요소는 가사고, 청각적 쾌감 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원하는 리스너들은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단순히 본토의 사운드를 듣는 것이 아닌, 진실되고 서사성있는 가사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이해하는 순간, 진정한 힙합의 맛을 일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