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rics, 그 안의 미학적 가치

힙합 2021년 05월 30일

힙합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3가지를 뽑으라면, 라임(Rhyme), 플로우(Flow), 펀치라인(Punch-Line)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간, 즉 위 3가지 요소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바로 가사(Lyrics)다. 다시 말해, 힙합 음악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청각적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가사의 질을 잘 생각하여야 한다.

단순히 청각적으로 즐거운 것을 떠나 곡의 짜임새 서사성을 중요시하는 현대 힙합 문화에서 가사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되어버렸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0:58부터 해당 가사 시작

"포토 슛 미러가 없는 이 카메라 코딱지 파다가 나왔다"     - sokodomo, <거울> 中

해당 가사는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뜬금없는 가사이다. 애초에 해당 곡을 같이 부른 Untell과 함께 경연곡으로써의 청각적 쾌감은 살렸지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가사로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문학 작품 '거울'을 주제로 한 곡이었기 때문에 깊은 가사를 기대한 리스너들은 더욱 아숴워했다.

이러한 좋지 않은 예시가 있는가 하면, 국내 올드 스쿨(Old Skool)의 거장, P-TYPE의 곡들과 같이 좋은 예시가 있기 마련이다.

3:00부터 해당 가사 시작

"누군가는 바보처럼 서러워도 걸어야 할 길이었다고 그리 해야만 했다고"                               - P-TYPE, <돈키호테> 中

P-TYPE은 한국 힙합의 거장으로, 아직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힙합 문화를 자리잡게 해준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지금과는 달리 '정신 없는 음악', '아웃사이더 문화'라 여겨졌던 힙합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이기에 자신의 1집 <Heavy Bass>의 3번 트랙 <돈키호테>를 통해 한 명의 선구자이자 외로운 길을 걸어야만 했던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리스너들에게 드러내었다. 이러한 빼어난 서사성은 힙합 음악의 미학적 가치를 더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P-TYPE이 대단한 OG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더 있다. 버벌진트와 함께 힙합의 3요소 중 하나인 '라임'을 정립한 한국 라임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UMC가 주장해왔던 '한국 힙합에서 라임의 정립은 불가능하다'라는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마주쳐 깨부쉈기 때문이다.

2:17부터 해당 가사 시작

"불한당가, 불안감과 억울한 밤 따위 금한다 따분한 감각들 아까운가? 그맘 다 안다, 그만 간봐" - P-TYPE, <불한당가> 中

실제 가사를 보지 않은 채로 해당 곡을 감상한다면, '불한당가'라는 단어만 들릴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곡으로는 한국 힙합 역대 최고의 단체곡, '동전 한 닢 remix'의 화나가 쓴 벌스가 있다.

7:40부터 해당 가사 시작

"힙합이 이 땅 위 자리 잡기까지 차디찬 시각이란 비탈길과 실랑이
괄시나 심한 비난, 이간질 딴지 사이 만신창이 삭신 난 이 바위 앞의 가위
하지만 피하지 마 시작이 반이야 단지 mic와 피 땀이 확실한 실마리
가시밭길과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 뒤 야심찬 희망이 날 기다린다니까"                                    
- 화나, <동전 한 닢 remix> 中

해당 벌스는 모음 'ㅣ'와 'ㅏ'만으로 구성되어있다(mic=마잌/싸움=쌈). 벌스가 공개된 직후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벌스'라는 극찬이 떠돌았다. 이와 같이 라임도 가사의 미학적 가치를 돋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3요소 중 마지막을 담당하고 있는 펀치라인은 다른 두 요소에 비해 판단하기 쉽지 않다. 서사성은 시각으로, 라임은 청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반면에 펀치라인은 개념에 대한 이해와 순간 판단력을 갖추어야 제대로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펀치라인이 되려면 불특정 다수의 청자가 듣자마자 곧바로 이해할 수 있거나 리스너 집단이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사가 필요하다.

1:21부터 해당 가사 시작

"Rap Battle도 못해본 놈들이 쓰는 Battle Rap 난 프리스타일로 해도 것보단 '두 배'로 해 넌 용돈 벌고 싶으면 '세배'는 해야지 보여줄 장기가 없으면 '네 배'를  째"                                     - 올티, <OLL' READY> 中

2:39부터 해당 가사 시작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알잖아 안양고 내 학번은 31035 '전학을 갔다온건가..'    헷갈려봤어? '관양중' 출신 놈이 지금 '부흥중'이라서" - 올티, <Town> 中

이러한 점에서 올티는 가히 현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펀치라인을 잘 이용하는 래퍼라 평할 수 있다. 18세의 나이로 쇼미더머니 3 본선 경연곡으로 사용한 <OLL' READY>는 곡 전체가 펀치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펀치라인으로 범벅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리스너들을 자극했던건 위에 소개한 '두 배, 세 배, 네 배'라인이다. 중의적 표현을 가진 '세배'와 '네 배'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쉬우면서도 큰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Town>의 경우 자신의 출신인 '관양중'과 옆 학교인 '부흥중'을 이용하여 펀치라인을 구성했다. 자신의 출신을 헷갈려하는 친구에게 '관양중'에서 '부흥중'으로 옮겼다는 가사인데, 진짜 옆 학교로 옮겼다는 의미와 래퍼로서 자신이 '부흥하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를 참신하게 섞어낸 라인이다.

최근 트렌드가 붐뱁에서 트랩, 싱잉랩, EMO 힙합 쪽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생기고, 이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사의 중요성이 덜 중시되는 추세가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곡의 필수 요소는 가사고, 청각적 쾌감 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원하는 리스너들은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단순히 본토의 사운드를 듣는 것이 아닌, 진실되고 서사성있는 가사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이해하는 순간, 진정한 힙합의 맛을 일깨울 것이다.

김도겸

하나고등학교 10기

Great! You've successfully subscribed.
Great! Next, complete checkout for full access.
Welcome back! You've successfully signed in.
Success! Your account is fully activated, you now have access to all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