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langelo

미술 2021년 08월 13일

르네상스 – 예술의 재창조

14세기부터 16세기 말, 유럽에 르네상스의 바람이 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양식이 다시 조명받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건축과 조각, 회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으며, 과학 분야에서는 위대한 발견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창작, 연구 활동의 중심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산드로 보티첼리 등의 르네상스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도 르네상스의 중심이 되어 예술 활동을 전개했다. 미켈란젤로는 누구이며, 그의 작품들에는 어떠한 비하인드가 숨겨져 있을지 알아보자.

미켈란젤로, 위대한 예술가의 서막

그림 1 미켈란젤로

1475년, 미켈란젤로는 소규모 은행가 집안 귀족의 후손으로 태어난다. 고전문법학교에 입학하지만, 미술을 하기 위해 당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알려졌던 화가, 기를란다요의 제자가 되어 생활한다. 그러나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에게 일을 시키고 밖으로 놀러 다니기만 했고, 이미 스승의 실력을 뛰어넘은 미켈란젤로는 1년만에 그에게서 벗어난다. (여담으로 미켈란젤로가 반발심에 스승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들어갈 벽화 중 하나를 살짝 고쳤으나 스승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자 화가 나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로렌초 메디치의 눈에 들어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에서 예술 작업을 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평생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데, 이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한 성당의 벽화 작업을 하던 중 그의 재능을 시기한 피에트로 토리지아노라는 친구와 싸움이 붙어 코뼈가 내려 앉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21살에 잠자는 큐피드를 고대 그리스 스타일로 본떠 만들었는데, 이것을 본 로렌초는 방금 발굴한 것처럼 위조해 달라고 부탁하고, 라이리오 추기경에게 그리스 유물로 속여 팔게 된다. 가짜임을 알고 돈을 환불 받은 추기경은 그의 실력을 높이 보고 1496년 바쿠스상을 의뢰하게 된다. 그러나 술의 신을 표현한 로마 조각에서 추기경이 원했던 우아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추기경은 이 작품을 거절한다. 이 작품은 나중에 은행가인 야코프 갈리가 이 작품을 사들이게 되고, 미켈란젤로가 마음에 들었던 갈리는 앞으로 그의 작품 중개인이자 재정 보증인이 되어준다. 갈리가 처음으로 미켈란젤로에게 중개해준 작품이 바로 미켈란젤로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피에타」이다.

피에타 (1499 – 1500)

그림 2 피에타

피에타는 프랑스 추기경 드라그롤라의 장례 채플을 위해 만든 조각상이다. ‘연민’의 뜻을 가진 피에타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의미의 작품인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죽은지 3시간이 지난 예수가 사후강직이 일어나 딱딱해 보여야하지만 조각상에서는 산 사람처럼 말랑말랑하게 보이는데, 이를 두고 미켈란젤로가 일부러 예수의 모습을 죽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모님의 어깨에서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 부분에는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제작’ 이라는 뜻의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밀라노 출신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자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가 밤에 다시 돌아와 새겨 넣은 것이다.  (당시에 이탈리아에서는 지역감정이 매우 심했다.) 작품에 작가가 서명을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금기시 되었는데, 첫번째는 신도 세계를 창조하고 서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대부분의 작품이 교회의 권력자들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의뢰하는 것이기에 보수를 많이 주는 대신 서명을 남기지 않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켈란젤로는 서명을 남김으로써 더 유명해질 수 있었다.

다비드 (1501 – 1504)

그림 3 다비드

로마에서 생활하던 미켈란젤로는 1501년 아버지의 간청에 못 이겨 26살 생일을 보낸 직후 피렌체로 돌아온다.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공화정이 수립된 피렌체 정부로부터 다비드상을 의뢰 받게 된다. 그는 다비드 상을 의뢰받고 스케치북에 이렇게 적는다.

다윗이 돌팔매로 거인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나도 거대한 대리석을 이길 것이다.

지지대 포함 5.17m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작은 키의 미켈란젤로는 고군분투했는데, 만들던 와중 코가 크다며 지적한 피렌체 행정부의 수상 소델리니 앞에서 망치질 하는 척을 하며 손에 있던 대리석 가루를 뿌리자 수상이 “이제야 생명력이 도는 것 같소”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기존의 다비드상들은 골리앗의 머리를 든 승리의 순간을 묘사하지만, 이 작품은 전투를 결심한 전사의 엄숙한 결의를 나타내고 있다. 또, 거대한 손과 머리가 나타내는 유난히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은 대성당 지붕에 설치함을 염두에 두고 아래서 올려다봤을 때 더 두드러지게 보여 전투를 앞둔 긴박한 상황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하트 모양의 눈은 사실 골리앗을 돌팔매질 하는 다윗의 이글거리는 눈을 표현한 것인데, 이 또한 아래에서 봤을 때 강렬한 눈빛을 표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두오모 성당 돔 중앙 천정 아래에 설치할 계획이었던 이 다비드 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등의 르네상스 거장들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토론 결과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피렌체 시청 베키오 궁전 앞에 놓기로 결정되었고, 1504년 9월 대중에게 공개된다. 비록 작품 전시 위치가 변경되며 미켈란젤로의 의도가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은 피렌체 시민들에게 교황과 황제의 세력을 견제하고 도시의 독립을 지키는 상징이 되어준다.

혼란기

다비드 상을 완성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정부로부터 베키오 궁전 대회의실에 ”카시나 전투”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데, 재미있는 점은 옆의 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되어 “앙기아라 전투”를 담도록 예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두 위대한 예술가의 걸작이 한 방에 같이 완성될 뻔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새로 선출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가게 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완성을 하지 못하고 피렌체를 떠나게 되어 무산된다. 이 두개의 미완성 작품은 안타깝게도 이후 증축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그림 4 율리우스 2세 영묘의 설계 (출처: 다음 블로그 - 광우의 문화 읽기)

한편 로마에 도착한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영묘의 설계를 부탁받는다. 미켈란젤로는 40명 이상의 조각품이 들어가는 엄청난 대리석 구조물을 설계하고 대량의 대리석을 주문한다. 그러나 교황청은 무덤으로 예정된 자리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고, 무덤에 들어갈 돈도 그 쪽으로 돌리기로 결정한터라 미켈란젤로에게 대리석 값도 지불하지 않고, 그가 조각을 시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이벌들의 계략으로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의구심을 품은 미켈란젤로는 배신과 분노에 가득 차 로마에서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다.

미안함도 표시하지 않은 교황은 이번에는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새로 그릴 사람을 모색하는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켈란젤로를 추천받는다. 사실 이 추천은 조각 활동만을 하고자 했던 미켈란젤로를 몰락시키기 위한 다른 예술가들의 모함이었다. 이미 교황청에 단단히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러자 교황은 엄벌을 주겠다며 그를 협박하고, 미켈란젤로는 결국 뜻을 굽히고 교황을 알현한다. 대신 그는 작품 요청을 수락하며 두 가지 조건을 다는데, 내가 뭘 그리던 아무도 간섭하지 말고, 작품의 작업 과정을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1508 – 1512)

그림 5 시스티나 에배당 천장화

천지창조라고도 알려진 이 작품은 사실 천지창조 외에도 성경의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어 '천장화'라고 불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엄청난 작품은 중앙이 천지창조 이야기를 담은 그림 3개, 아담&이브의 타락 이야기를 담은 그림 3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담은 그림 3개로 구성되어 있고,  겉에는 예언자들의 그림과 가족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구도는 르네상스 미술의 대칭성과 세밀함, 완벽함을 잘 보여준다.

그림 6 천장화 구성 (출처: 위키백과)

이 작품의 색이 지금까지 바래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프레스코 기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인데,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을 바르고 이것이 마르기 전 물감을 칠해야 하는 것이라서 엄청 힘든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대작을 완성한 미켈란젤로는 4년동안 매일 18시간씩 누워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는데, 30대였던 그가 노인의 몸이 되어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어깨와 등은 휘었고, 천식이 생겼으며 한쪽 눈에는 눈병이 생겼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하는데, 교황이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중간에 몰래 들어온 것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미켈란젤로는 노발대발하며 당장 나가라고 하다가 교황을 돼지라고 욕하게 된다. 이를 들은 교황은 하인들을 시켜 미켈란젤로를 두들겨 패고, 단단히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미켈란젤로밖에 없자, 교황은 사과 편지를 써서 미켈란젤로를 다시 부른다. 미켈란젤로는 이 편지를 찢어 다시 교황에게 보낸다. 미켈란젤로의 태도에 화가 난 교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이 반드시 미켈란젤로를 불러야 된다고 하자 이번에는 전에 무산된 영묘의 대리석 값을 동봉한 편지를 보내는데, 미켈란젤로는 돈만 빼고 다시 편지를 돌려보낸다. 그러자 교황은 피렌체 전체를 불태워 버린다며 그를 협박한다. 여담으로 교황이 사람들한테 피렌체에서 가장 못생기고 성격 더러운 사람 데리고 오라고 하자 그가 붙잡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쨋든 이렇게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대작을 마저 완성한다.

예술 활동의 전성기

그림 7 완성된 율리우스 2세 영묘와 모세상(좌),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우)

그를 괴롭히던 율리우스 2세 교황이 죽자, 미켈란젤로는 23년 동안 성당 및 도서관 건축, 영묘 작업 마무리 등 여러 작품을 만들며 평화롭게 예술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60이 되었을 때 교황은 불길하게도 그를 불러 금이 간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뒤편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줄 것을 요구한다. 천장화의 트라우마로 그림은 그리기 싫었던 그였지만, 교황의 권위에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게 된다.

최후의 심판 (1536 – 1541)

그림 8 최후의 심판

제목 그대로 천주교 교리의 종말론인 최후의 심판을 담은 이 작품은 프레스코 기법이 적용된 벽화이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와 달리 이번 작품의 작업 과정을 공개하며 작업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는데, 비판을 받으면서도 신의 권능과 순교자들의 숭고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성기가 드러나도록 작품을 그린다. 하지만 끊임없는 비판 속에 작품이 만들어진지 23년이 지난 후 추기경들의 회의에서 성기 부분을 가리도록 결정하고, 미켈란젤로의 제자에 의해 모두 옷으로 가려지게 된다.

총 391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은 천국에, 나쁘게 대한 사람은 지옥에 그렸는데, 일례로 예수님께 천국에서 열쇠를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친절했던 바오로 3세 교황이고, 지옥에서 뱀에 성기가 물린채로 그려진 사람은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계속 지적을 했던 추기경이다. 또한 미켈란젤로 자신은 가죽 밖에 남지 않은 채로 늘어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낸다. 그는 소신을 살려 노예 매매가 왕성하던 시절임에도 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 중 흑인을 표현했다. 또 얇은 천국 명부와 두꺼운 지옥의 명부는 그의 작품 속 디테일을 보여준다.

그의 말년

미켈란젤로는 말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도시계획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로 들어가는 새 관문 ‘포르타 피아’를 만들었고, 베드로 성당의 지붕을 설계하고 건축을 감독하기도 했다.

그림 9 미켈란젤로의 무덤

미켈란젤로는 1564년 2월 18일, 88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사망한다. 그의 시신은 그가 유년기에 예술을 익힌 산타 크로체 성당의 무덤에 안치되어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신념이 뚜렷했고, 자신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미켈란젤로에 대해 조사해보면서 기존에 대단한 그림으로만 인식하고 넘어갔던 작품들과 조각상들에 담긴 뜻과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소설가가 단어를 선택하듯 설계 하나에 담긴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노력과 정신, 뜻을 알 수 있었다. 뛰어난 재능 만큼 인생을 죽는 순간까지 예술 활동에 바친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대한 글을 여기서 마친다. 기회가 된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또 다른 르네상스 예술가와 앤디 워홀, 모네와 같은 다른 시대의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다.

(일부 내용의 경우 작품 및 작가의 생애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출처

Koh, PyungSeok.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얽힌 이야기 3가지.” 허프포스트코리아, 21 Dec. 2016, www.huffingtonpost.kr/2016/12/21/story_n_136855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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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재

하나고등학교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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