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정치 상황과 김수영의 시 세계

역사학 2021년 06월 16일

196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독재 정권 시기 속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4.19 혁명, 6.3 항쟁, 그리고 지속되는 민주화 운동의 물결. 이러한 시대 속 문학을 통해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문학을 통해 현실 개혁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 문인들은 '참여 문학'을 주장하였고, 본래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본 '순수 문학'을 주장한 문인들과 대립을 보였다. '참여 문학'을 주장한 문인 중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윗 그림에 나오는 김수영이다. 본 글은 김수영의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각각 살펴보고, 1960년대 시대 상황이 그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적 맥락을 전달하고자 한다.

1940년대~ 1950년대 작품: 모더니스트

남묘 문고리 굳은 쇠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과부의 청상이어라 날아가던 주작성 깃들인 시전 붉은 주초에 꽂혀있는 반절이 과하도다 아아 어인 일이냐 너 주작의 성화 서리앉느 호궁에 피어 사위도 스럽구나 한아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 김수영, <묘정의 노래> 中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그는 만주로 이주하여 연극활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에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온 그는 <예술부락> 제 2집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 쓰기를 시작한다. 위 글은 <묘정의 노래>의 일부이다. 어떤가? 우리가 흔히 '민중'을 노래한 시인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감각적인 이미지와 세련된 문체가 어우러져 난해한 글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시는 이미지, 공간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또한 봉건적 인습을 거부하는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1960년대 작품: '자유'를 노래하다

1960년 3월 15일, 전국에서는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일어났다. 12년간 집권 중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선거를 조작하였다. 3월 15일 당일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시위가 열렸다. 4월 초 마산 시위에 참가했던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마산 해변가에서 발견되었다. 대중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마침내, 4월 19일 서울의 대학생들이 경무대로 몰려들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4.19 혁명이 시작되었다.

김수영은 대중들의 자유를 위한 열망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 또한 '명확한 현실 참여'로 바꾸게 된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시론을 설명하면서 남긴 글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여, 침을 뱉어라' 中

이 글이 전달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를 쓴다는 것은 '몸'으로 하는 실천적 행위라는 것이다. 실천적 행위로서 시 쓰기를 규정할 때,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작품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시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풀>, <폭포>와 같은 참여시를 작성하게 된다.

그의 시를 매개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자유'가 될 것이다. 그는 1960년 충격적인 시 한 편을 작성한다. 바로 '김일성 만세'이다. 한번 시를 읽어보자.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이 시는 물론 발표되지 않았다. 만약 발표되었더라면 그는 한국을 떠나야 하였을 것이다. 시 '김일성 만세'는 김수영이 흔히 말하는 '빨갱이', '공산주의자'임을 보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언론 자유가 제한되었던 1960년대 현실을 '김일성 만세'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하며 비판하는데 있다. 4.19 혁명을 통해 집권한 장면 내각은 다양한 세력의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였다. 혁명의 동력은 잃어가고 있었던 중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 김수영에게 여전히 '한국'은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철저한 '자유주의자'였다. 만약 그가 북한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이승만 만세'라는 시를 썼을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현대에도 울림을 준다.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는 '자유'가 있지는 않은가. 그의 시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까닭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자유'에 대한 문제가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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