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의 투기적 공격모델과 검은 수요일 사태
이론적 배경: 크루그먼의 투기적 공격모델
1. 폴 크루그먼
폴 로빈 크루그먼은 미국의 경제학자로서 2008년 신무역이론으로 경제지리학에 기여하여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이다. 그의 투기적 공격모델은 통화위기를 외환시장의 투기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그의 두 가지 모델을 포괄한다.
2. 크루그먼의 1세대 투기적 공격모델
제1세대 투기적 공격이론은 두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첫째로는 환율이 고정되거나 변동이 제한되어 있는 페그제 [1]상황을 전제한다. 둘째로, 크루그먼은 통화팽창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총수요가 확대되어 경상수지가 적자가 될 때를 전제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급격한 환율 절하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경제 주체들의 의도적으로 국내 금융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통화위기가 발생한다. 크루그먼은 금융시장 내에서의 균형점에 대해서 설명하며, 금융시장의 균형이 붕괴되어 다른 균형점으로 급격하게 일어나는 과정에서 일정한 혼란이 발생하며, 이 혼란이 금융 위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를 다중 균형이론 (multiple-equilibrium)이라고 한다.
3. 크루그먼의 2세대 자기실현적 예언 모델 (Self-Fulfilling Effect Model)
크루그먼의 제 2세대 모델은 제 1세대 투기적 공격모델에 비해 구조적 측면보다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제 2세대 자기실현적 예언 모델 역시 경제 주체들이 화폐의 평가 절하를 예상한다는 점에서는 1세대 모델과 유사하다. 단, 경제 주체들이 단순히 예측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평가 절하를 의도적으로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따라서 발생한다는 제 1세대 모델에 반해서, 통화가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의도적으로 이루어 낸다는 점에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제 2세대 모델에서 크루그먼이 설명하는 통화 가치 하락의 원인은 제 1세대와 흡사하지만, 금리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고정 환율제도 하에서, 특정 국가 혹은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고평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금리를 낮추는 확장적 통화정책의 시행가능성을 투기꾼들이 예측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제 2세대 모델은 1세대와 거의 유사하나, 투기꾼들의 공격 능력과 의도적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을 1세대에 비해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의 배경: 독일 통일과 EEMS 제도
· 독일 통일과 이의 경제적 여파
1. 독일 통일
독일의 통일 과정은 순전히 정치적인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90년 10월 3일에 이루어진 독일의 재통일 사건은 사실상 멸망한 독일 민주 공화국의 주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에 가입하는 형식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같은 해 3월 18일 자유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게 되고, 독일을 점령하였었던 네 나라[2] 간에 <독일 관련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독일은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게 된다.
서독은 1969년 취임한 빌리 브란트 수상의 화해적인 동방 정책을 바탕으로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정부는 서독과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부터 인정되었던 통행의 자유를 확대해 나갔다. 마침 당시 소련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동독 역시 개혁개방을 이루게 되면서 독일 통일을 가속화 하게 된다.
서독은 통일 이전부터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게 되는 우수한 공업력과 과학 기술 전반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전쟁 이후 폐허의 국가였던 패전국 독일의 반전적인 성장이었다. 이에 따라 서독 마르크화는 국제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이에 따른 위력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동독의 경우 공산주의 국가로서 서독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졌다. 통일 독일은 정치적 화합으로 인해 만들어진 통일 독일을 경제적으로도 화합시키기 위해 1대1 상환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2. 서독의 1대1 상환 정책과 마르크화 인플레이션
1대1 상환 정책은 결과적으로 독일의 경제적 통합을 도모하는데에는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 부작용을 초래한다. 첫째는 인플레이션이다. 서독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던 강대국이었던 반면 동독은 사회주의적 정책과 고립주의로 경제적으로 부진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독의 화폐 가치를 서독 화폐와 일치시킨 다는 것은 동독 주민들의 구매력에 대한 고평가였으며, 결과적으로 경제적 능력에 비해 통화량을 높게 책정한 꼴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동독은 서독 마르크화 같은 가격으로 상환을 받는 조건으로 서독과 동일한 노동법에 따라 노동자들의 처후를 개선할 것을 약속했는데, 이는 개발도상국 수준의 동독에 무리한 요구였으며, 이것이 오히려 동독의 공업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 EERM 제도

EERM (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은 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의해서 1979년 3월 13일에 제시된 시스템으로서 목적은 유로화 도입에 있어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과정의 일환이었다. ERM의 기본적인 기념은 환율의 변동 가능 마진(margin)을 남겨 놓음으로써 그 범위 내에서는 환율 변동이 자유롭게 하되,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 제도는 Semi-pegged system(준페그제도)라고도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European Currency Unit (ECU)를 지정하고 있었는데, 참여하고 있는 화폐들의 가치의 가중평균을 바탕으로 측정한 값이었다. 이 값을 기준으로 2.25% 미만으로 유지하도록 하였다.
· EERM 제도와 독일 금리인상, 그리고 유럽 경제에 여파
당시 독일은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을 단행했다. 독일은 금리를 극단적으로 인상함으로써 외화 유입을 장려하고 유통 통화량을 줄여 화폐 가치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런 정책은 긴축적인 정책으로서 성장하는 독일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크루그먼의 평가에 따르면 독일은 당시 통일로 인한 경제적인 시너지와 공업의 발전 기조에 따라 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금리 인상은 독일의 마르크화에서 멈추지 않았다. EERM 시스템으로 인해서 독일로 화폐가 다량 유출될 시 주변국들은 마르크화와의 화폐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잠재적인 외환 보유고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히, 서유럽의 달러 자본이 독일로 다량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유럽의 국가들은 EERM을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위협을 느끼게 된다.
환투기성 공격과 영국 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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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의 선전포고
당시 영국 역시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같이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환율 방어를 위해 고금리를 유지하며 억지로 통화량을 조절하여 화폐 가치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월스트리트의 투기꾼이었던 조지 소로스는 이 상황을 두고 영국의 파운드화가 고평가되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영국의 화폐가 결국 환율 방어에 실패하고 평가 절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멀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는 영국에 대한 환율 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름 없는데, 영국은 영국의 경제는 문제가 없다는 간단 명료한 답으로 대응하였다. 이에 조지 소로스는 “영국 화폐는 말라리아에 걸렸다”라는 과격한 언사를 섞어 가며 영국 화폐에 대한 언론 공격을 감행하였다.
· 조지 소로스의 파운드화 공매도
조지 소로스는 파운드화에 대한 공격에 앞서,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 경제적인 부를 거머쥘 수 있도록 파운드화에 대한 공개적인 공매도를 진행하였다. 공매도란 특정 주식, 채권, 상품 등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예측하는 투자자가 해당 재화를 현재 가격에 판매한 후 미래 가격으로 사는 제도이다. N년에 공매도를 진행하였다면, N+1년에, N년의 가격으로 미리 물건을 판매하고, N+1년이 되면 그 해의 가격으로 대금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소로스는 이 제도를 이용하여 파운드화에 대한 공개적인 공매도를 진행하는데, 공매도를 공개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다른 투기꾼들의 동참을 유도했으며 이를 통해 일종의 레버리지[3]를 노렸을 것으로 분석한다. 이는 공매도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파운드화가 받는 하중 압력의 크기를 늘리고자 한 계획으로 추정된다.

· 조지 소로스의 대파운드화 환투기 공격
조지소로스는 직접자본을 투입하여파운드화의 가격을떨어뜨리고자 했다. 그는 본인의달러 자본을담보로 파운드화를대출하여 자본시장에다량 방출시켰으며반대로 마르크화를매입했다. 마르크화의상대적 가치상승을 확신했기때문이다. 이에따라 기존영국의 고금리정책으로유지되고 있던파운드화 가치는소로스가 통화량을급증시키면서 직접적인타격을 입게된다. 파운드화가치는 순식간에하락할 위기에처했다. 당시소로스가 투입한자본은 약100억 달러였으며그가 레버리지효과로 유도한타인 자본은1100억 달러로추정된다.
· 영국의 대응
조지소로스의 대파운드환투기 공격에대한 영국의정책은 금리추가 인상과외환 매도를통한 파운드화매수였다.
I) 금리인상
영국정부는 환투기성공격이 시작된지3일만에 금리를기존의 12%에서15%로 인상했다. 그러나, 기존독일 금리인상 사태의여파로 이미고금리를 유지하고있던 영국은금리 추가인상과 같은긴축성 정책을감당할 경제적인능력이 없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과하게 고평가되어있다는 소로스의예언이 들어맞은것이다.
II) 파운드화 매수
영국은금리를 3%+ 인상하였지만환투기성 공격에의해 여전히파운드화가 하중압력을받자, 외환을매도하여 파운드화를매수함으로서 환율을본격적으로 방어하고자했다. 그러나당시 영국의외환은 독일사태로 인해많이 탕진되어있는 상황이었으며, 약 100억달러정도로 추정된다. 조지 소로스가영국 화폐가치 절하를목표로 투입한자금이 100억달러였으며, 그가레버리지 효과로간접적으로 투입한자금이 추정1100억달러[4] 였음을 감안하면, 영국의 파운드화매수 전략이방어에 성공할수 없는상황이었음을 알수 있다.
· 영국의 EERM 탈퇴와 파운드화 가치 절하
영국은 환율 방어가 불가함을 인지하고 뒤늦게 EERM 탈퇴를 선언한다. 이는 영국이 사실상 소로스를 필두로 한 환투기 세력과의 환율 싸움에서 패배했음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은 기존의 페그제를 전격 폐지하고 변동 환율제로 전향하게 된다. 조지 소로스는 영국 공격을 통해 68.4%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냈으며, 영국은 이 사건으로 경제가 침체되며 이 날은 “검은 수요일 사태”라고 불리우게 된다.
이론 적용 및 고찰
검은 수요일 사태는 Paul Krugman의 제2세대 자기 실현적 예언 모델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소로스는 영국의 화폐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으며, 이를 직접 실현하기 위해 환투기성 공격을 감행했다. 이 사태는 제2세대 모델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세계 금융 시장에서 투기 세력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영국 경제 위기의 원초적 원인은 제1세대 모델과 흡사하게 고정 환율 상황에서 발생한 경상수지적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을 외환 위기로 확장시킨 것은 자명하게도 환투기세력의 의도적 공격이었다.
국가 경제 침체를 의도로한 투기 공격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는 심할 경우 국가 경제를 부도내어 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입장에서는 투기 세력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는데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국가는 의도된 공격에 대한 대비책과 방어책을 수립하여 만일에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검은 수요일 사태의 시사점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로, 과도한 고금리 정책은 유사시 국가의 대비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독일의 금리 인상에 대한 여파를 고금리 정책으로서 방어한 영국의 경우 의도적 공격에 대해 방어할 능력이 부족했다. 둘째로, 페그제는 분명 안정성 추구의 측면에서 그 장점이 탁월하나, 환투기 세력의 의도적 공격에는 매우 취약하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동아시아 경제 위기 역시 페그제 국가였던 태국에서 시작하였듯이, 역사적 사례는 귀납적으로 페그제의 위험성을 입증하고 있다. 셋째로, 국가의 외환 보유고를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셋째의 경우 검은 수요일 사태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1997년 “IMF 사태”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외환 보유고는 국가의 재정적 위기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독일 금리 인상에 대한 방어 조치로 인해 외환 보유고를 탕진한 상황이었다. 1997년 한국의 경우에도 과도한 어음거래와 국가부채로 인해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불안정한 상태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감당할 능력이 부재했다. 이와 같이 국가는 경제적 호황기에도, 불황기에도 경제적인 사태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 국가의 경제적 위기 상황을 공황 상태로까지 확장 시켜 이익을 얻고자 하는 투기 세력은 시장 경제와 금융 시장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1] 페그제 혹은고정환율 제도는한 나라의통호가치를 특정국가의 통화에고정시켜 환율변동을 막고정해진 환율로교환을 약속하는고정환율제도를 의미한다.
[2] 연합군 독일점령 시대로일컫어지는 제2차 세계대전종후의 시기에독일을 통치했던4개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을 의미한다.
[3] 타인의 자본을통해서 수익을발생시키는 구조를의미하며, 소로스의경우와 같이의도적으로 타인의자본을 통해수익을 발생시킨경우를 정(+)의 레버리지라고부른다.
[4] 조지 소로스는투기꾼으로서의 “권위”가 상당했으며그의 말은대체로 신뢰를얻었기 때문에그가 불러올수 있는레버리지 효과역시 지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