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의 글을 써보려 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적으로 죽음의 정의는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를 의미한다. 죽음이라는 것을 그저 생물학적으로 정의하고, 생물학적 현상의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죽음이 사회적으로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 그것의 아름다움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삶을 마무리 단계이자,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타인들에겐 죽은 자의 여운과 감동이 물결처럼 퍼지는 순간이다. 누군가 죽는 다면, 그 사람이 남긴 업적(정신적 도움, 업무적으로 달성한 것 등)이 사회에 퍼질 것이다. 그 물결은 죽음으로 새 생명을 부여 받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자, 고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인간은 삶의 시작을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가꾸지 못한다. 그러기에, 삶의 마지막을 가꾸는 것은 능동적인 인간의 모습이며, 가치있는 것이다.
이런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 죽음을 바라보는 타인에게 슬픔을 주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인간이 그렇게도 타인의 감정을 곁눈질하고, 눈치를 보며 살았는가? 민족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인간,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명확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는, 인간다움을 규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그 '의지'를 가진 인간들이다. 마지막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의 영역도 아닌 개인의 영역이다.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죽음이 남용되면, 안락사가 남용되면 어쩌나.
의사결정이 어렵고, 정신이 멀쩡한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의 안락사는 당사자와 상관없이 결정되어도 된다 생각한다. 그 상태는 이미 죽은 상태와 마찬가지다. 자고로 인간에게 육체의 죽음보다 정신의 죽음이 더 깊고, 그 죽음이 인간다움의 상실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반론이 제기되었었다. 자살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성은 있으나,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안락사를 통해 죽음으로서 그 안락사가 원래 의도와 달리 남용되면 어쩌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 된다 할 지라도, 이성과 정신이 살아있다면 자신의 의지로 판단을 하는 것이고 결정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개인의 영역일 뿐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쉽사리 내리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해주었었다. '안락사를 하기 위해 비용이 발생한다. 빈곤층은 안락사를 하고자 하여도 하지 못하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권리가 부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인 것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 내 생각은 '죽음에 대한 권리는 동일하게 부여되고, 개인의 영역이지만, 그 권리를 누리는 것에 있어 제약이 있다면 특정 주체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특정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정부가 될 것인가, 가족이 될 것인가, 사회가 될 것인가, 국민이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다.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권리는 동등하나, 권리에 대한 접근이 동등하지 못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죽음의 영역이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