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의 딜레마

오피니언 2021년 07월 13일

서론

코로나 19 로 세계 사회의 빈부격차, 사회 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국가 간 빈부의 격차 역시 더욱 심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내의 국민 간 빈부의 격차, 지역 간의 빈부 격차 역시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빈곤국가의 어린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으나, 이는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닌 식량의 분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이다. 넘치는 식량과 빈곤국의 굶주림, 이 모호한 아이러니함에 대해서 이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본론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위계가 있고, 이 세상 모든 것은 줄 서 있다. 수능 시험에서도 1등과 꼴등은 존재하고, 학교 내신 시험에서도 1등과 꼴등이 존재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신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카스트제 속에서 수드라, 수드라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불가촉 천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카스트제는 인도 사회에서 없어진 신분 체계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카스트제는 아직 남아 있어 인도인들의 삶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 프랑스 혁명도 있다.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은 전체 인구의 불과 2%만 차지하지만, 제 3신분은 전체 인구의 98%를 차지하며 제 1, 2 신분을 위해 노동한다. 이것이 구제도의 모순이고, 이를 원인으로 프랑스 혁명이 촉발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국가, 어떠한 신분 체제와 경제 체제 속에서도 사람 간 순서는 존재한다. 권력을 가지는 사람이 생기고, 권력에 빌붙는 사람이 생기고, 1등이 생기고 2등이 생긴다. 이 세상은 줄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위계가 등장한다. 과거의 힘이 강한 사람,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세습되는 권력이 강하였다면, 오늘날의 사회 체계 속에서는 돈이 많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보통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부자들 중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였을 수도 있고, 스티브잡스와 같이 보잘 것 없이 시작하여 자신의 개인적 능력만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는 아직까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신분질서 탓에 애초에 낮은 위치에서 시작했을 수도, 또는 후천적으로 돈을 잃어 가난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사람들의 극소수인 부자들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우리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들에게 일할 뿐이고, 우리보다 가난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 역시 그 상위 계층을 위해 노동할 것이다.  전자 쓰레기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버리는 스마트폰, 냉장고, TV와 같은 전자기기들이 처리되면서 그 전자쓰레기들은 아프리카나 중국의 빈민 지역으로 가서 전자 쓰레기가 된다. 전자 쓰레기는 중금속을 배출하고, 환경호르몬을 배출하여 그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 역시 자국 내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로 수출한다. 자국의 쓰레기, 자국의 생산과 소비 활동으로 발생되어진 쓰레기들을 우리는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나라에 보내고 있다. 국가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 측면에서도 이러한 것들은 많이 발생하고는 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갑질 사건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

요즘 들어서 지엽적인 학문에 대해서 배우는 것보다 장르에 상관없이 세상의 여러 뉴스들을 보고, 생각해보고, 관련 뉴스를 찾아보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코로나19, 델타변이, 정치권의 대선 이야기, 환경문제나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심리가 들어나는 사회현상... 에 대해서 다루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현재의 코로나 19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정부의 코로나 19 대응책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며, 자영업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방역효과는 1도 없는 대응책이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정부는 경제를 생각해야 하고, 코로나 19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내 생각엔 21세기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세기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상의 대립,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 지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의 대립의 최종 종착역이 바로 이 코로나 19 대응책 관련 문제라고 생각한다. 방역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부가 지난 며칠 한 정책에 있어서(백신 접종 대상자에 한해 야외에서 일시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허용하는 것 등) 이러한 일련의 방역을 소홀히 하고, 민생을 보살피는 정책이 못 미더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방역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역이라는 것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고, 방역도 중요하나 민생 안정과 경제도 챙겨야 하는 노릇이다. 누가 맞고, 틀리다가 아닌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근데 어떻게 된 상황이든 달라지지 않을 것은 있다. 코로나 19가 오래 지속될 수록 그것에 대한 피해는 소상공인과 같은 일반적인 시민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다. 며칠 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다. 바로 "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과 숨 막히는 기술혁신으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금융자본의 거의 완전한 세계화로 이어졌다." 이다. 나는 이 문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금융자본이 세계화되어, 세계경제가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빈부격차,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 자본과 권력이 주를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지구 사회에서 양극구도의 몰락보다는 양극구도의 심화가 더욱 촉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힘의 논리, 자본의 힘,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과 노력으로 점철되어지는 것이 앞으로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회의감이 드는 부분은 나도 이러한 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아닐까.

결론

이 세상은 단 하나의 용어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작용, 어느 하나를 고려하게 되면 무언가 다른 하나는 상실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부의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것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부의 상당수를 소수 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부가 분배되기를 우리는 바라야 하는 것일까? 그 부의 분배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상관없는 부분일 테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자신들의 부를 우리 지구사회에 공평한 분배를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는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정보의 지원을 통한 자원 분배 또는 부자들의 부를 분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정부의 지원이라는 것도 부자들의 부를 정부라는 경제 주체를 통해서 대신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도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많은 책을 읽어보고, 여러 사회뉴스를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고 싶다. 요즘 내가 관심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 문제라는 것은 지금까지 경제적 상황, 사회적 문제들에 의해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고는 했다. 비닐 봉투의 사용을 규제한다고 하더라도, 작년 총선에서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수천만장의 비닐 장갑을 유권자들을 위해 생산한 것처럼 말이다. 환경 문제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는 문제이나, 그것의 영향이 우리에게 당장 닥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우리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여서 조금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문제를 일으킨 주체는 누구일까?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문제는 모든 인류의 잘못이고 책임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비교적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이러한 환경문제의 주체이다. 타인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바로 눈 앞에 닥친 효용과 편익을 위해서 행동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환경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빈민국 사람들, 또는 다른 종의 생물들이 받게 된다.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는 못하더라도, 환경문제의 폐단과 악습이 멈추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애먼 사람과 생명들이 피해를 받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난 앞으로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탐구해보고, 내가 어떤 시야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과 사고를 정리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학과 화학이라는 것을 도구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참고문헌

[1]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2007, P.175

[표지 그림]. https://unsplash.com/photos/kyCNGGKCvyw  

이주현

하나고등학교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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