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가 왜 멋있는지 알아요? 끝까지 갔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돈키호테를 만나봤다. 어릴 때 “풍차와 싸우는 미치광이 사나이”로, 각종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혹은 원래 스토리를 각색한 영화로 말이다. 한 평론가가 서양 문학에서 돈키호테만큼 많이 미디어에 차용된 작품은 없을 것이라 평했을 정도로, 돈키호테는 우리 주변에 정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단지 그런 식으로 소비될 작품이 아니다. 번역가에 따라 다르지만, 돈키호테 원작의 1권과 2권의 번역본은 보통 합쳐서 1,600쪽에 달한다. 작품의 길이가 길이인 만큼, 돈키호테의 원작에는 단순히 “풍차와 싸우는 미치광이 사나이”로 압축할 수 없는 정말 다양한 서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읽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많은 이들이 “인생작”으로 꼽는 고전이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자유와 정의다.
돈키호테가 사랑하는 자유는 단순한 물리적 자유가 아닌 정신의 자유이다. 2권 58장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보자.
“자유란, 싼초, 하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들 중 하나이지. 온 땅이 보유한, 온 바다가 품고 있는 모든 보물과도 견줄 수 없는 게 자유일세. 자유나 명예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도전해야 하고 또 도전할 만한 거야. 반대로 포로가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불행이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싼초, 우리가 떠나온 성에서 융숭한 대접과 환대를 받았기 때문일세. 하지만 그 맛있는 잔칫상과 눈으로 빚은 듯한 음료수들 한가운데서도 나는 배고픔의 좁은 골짜기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것들이 내 것이라면 제대로 즐겼을, 그런 자유로움으로 그 맛을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야.”
돈키호테는 백작이 그를 환영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주고 성안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배려해 주었지만, 결코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가 누리는 것과 그가 가진 것의 괴리에서 비롯된 불편함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는 기사로서가 아닌, 백작과의 식사에 항상 참여해야 하고 성안 사람들과 계속 교류해야 하는 성에서의 삶이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정신적 자유를 쫓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때로는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돈키호테가 작품에서 정의에 대해 직접 언급한 부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보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더 잘 나타내는 것이 백작의 부인이 돈키호테를 소개하는 말이다. 2권 30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는 돈 끼호떼, 세상에 정의가 있다고 믿는 바보 같은 기사입니다.”
이 짧은 문장에 두 가지 반전이 있다. 첫 번째는 화자가 세상에 정의는 없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옳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화자는 그 논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정의가 있다고 믿는 것이 바보 같은 세상이라면, 그 세상에 정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 세상에서 돈키호테는 정의를 믿는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도 세상에 정의 따위는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의가 있다고 믿는 것은 그래야만 세상이 변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상과 멀다고 거기에 맞춰서만 살아가면 절대로 이상에 가까워질 수 없다. 돈키호테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그는 설사 바보로 비치고 비웃음을 살지라도,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산다.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정의를 위해 기사로 살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자유와 정의에 집중에 책을 봤다면, 이제 돈키호테의 최후를 보자. 그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어리석은 기사 노릇을 후회하며 눈을 감았다면, 그만큼 허무한 마무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끝까지 자신의 레이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죽는 순간까지 기사로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임종을 지킨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2권 74장이다.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후회하면서 죽었다는 것은 아니다. 진짜 산다는 것은 무언가에 미쳐서 사는 것이고, 정신이 들어 사는 것은 매일매일 죽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돈키호테는 끝까지 미쳐서 죽었다. 돈키호테를 최고의 고전으로 꼽는 많은 이들은 그런 돈키호테의 정신을 그 이유로 보기도 한다. 중간에 정신이 들어 일상의 소시민적인 삶으로 돌아갔다면 돈키호테는 그저 그런 기사도 소설의 평범한 주인공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달랐다. 돈키호테는 끝까지 갔다. 우리는 사실 어떤 삶이 후회하지 않을, 맞는 삶인지는 다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 살 용기가 없을 뿐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와 정의를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어떤가, 간단하게라도 돈키호테를 만나보니, “풍차와 싸우는 미치광이 사나이”보다는 멋있는 남자이지 않은가? 고전은 단순히 줄거리나 이야기가 주는 교훈뿐만 아니라 직접 책을 읽으면서 피부로 느껴지는 감동과 의미가 있다. 삶이 힘들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돈키호테를 만나보자. 그때마다 돈키호테는 우리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