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늘이 맑아질 거야
신카이 마코토가 감독인 ‘날씨의 아이’ 를 의미와 상징성을 중점적으로 리뷰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영화의 시작부터 흐름을 따라가면서 해석하겠습니다. 우선 시작은 비가 내리는 병실에서 빛 한 줄기를 보고 어느 건물 옥상에 도착해 토리이를 통과합니다. 이 행위로 인해 영화의 큰 흐름이 시작됩니다.

장면은 전환되어 비가 쏟아지는 배 위에서 호다카는 비를 맞기 위해 갑판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비를 맞는 장면은 ‘쇼생크 탈출’에서와 같이 해방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괴상한 소리가 나면서 배로 쏟아지는 빗덩이에 맞으면서 미끄러지는데 이를 빛과 함께 스가씨가 등장하면서 구해줍니다. 여기서의 빗덩이는 추후에도 반복하여 등장합니다.

그리고 가출한 호다카는 도쿄에서 혼자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미성년자인 그를 고용해주는 곳은 없었고 그의 돈은 점점 떨어져갑니다. 이때 그가 갖고 있는 책은 “The catcher in the rye”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성적이 나빠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뉴욕을 방황하던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홀든은 위선자들이 판치는 학교를 떠난다는 핑계로 퇴학을 당하기 전에 먼저 뉴욕으로 떠납니다. 그리고는 뉴욕의 술집, 호텔, 클럽 등을 전전하며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 하지만, 어딜 가나 위선자들이 판을 칩니다. 이 영화에서 호다카가 방황하는 부분과 굉장히 닮은 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의 치밀한 장치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는 진행되고 호다카는 그를 배에서 구해줬던 스가씨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여러 떡밥들이 뿌려집니다. 맑음소녀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날씨계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소멸한다는 내용, 적란운 안에 무언가 무리지어 움직이는 이동물체가 있다는 제보 등이 전부 떡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내리는 비도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제보로 미지의 물고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SNS를 통해 확산되고 기상과학자에게서 하늘은 바다보다 미지의 세계로 미지의 생태계, 피안, 즉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말까지 듣게 되면서 우리는 영화의 주제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그와 동시에 호다카는 히나를 만나 맑음소녀 일을 시작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맑음, 즉 기쁨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날씨의 무녀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할아버지에게 듣게 되면서 장면은 급격히 암울하게 변하게 되는데요, 날씨의 무녀는 용과 물고기가 있는 풍경을 목격했고 이를 벽화로 표현했는데, 이 모습이 히나가 봤던 경치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날씨를 치료하는 것이 무녀의 역할로 그녀는 하늘과 임시 거처에 머무를 뿐인 사람을 이어주는 실의 역할을 하며 그녀는 결국 슬픈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히나는 영화 초반부에 토리이를 지나가면서 날씨가 맑아지기를 빌었고 이로 인해 하늘과 이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더욱 진행되어 경찰이 호다카를 잡으려는 상황이 되어 스가씨는 이 상황에서 어른의 이기적인 면을 보이며 호다카를 버립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죠. 또한 이때 히나의 몸이 점점 투명해진다는 것과 함께 날씨, 즉 하늘의 분노는 갑자기 추워져 눈이 내리는 등 점점 더 악화되어갑니다. 이때 호다카의 대사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하느님께 부탁하는 장면인데, ‘저희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고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말아주세요’라는 대사입니다.

호다카가 도쿄에 온 이유는 빛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즉 자신을 비춰줄 존재를 찾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히나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호다카로부터 찾았습니다. 도망치던 날 밤 히나는 미지의 세계인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미친 것 같았던 날씨는 다시 정상적인 여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왜 날씨가 되돌아왔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호다카는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히나를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하늘로 올라가기로 결심하죠. 이때 스가씨가 앞을 막으려고 나서게 됩니다. 사실 스가씨는 어른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간 존재 그렇기에 스가씨는 호다카에게 순순히 체포되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호다카의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에 아내가 죽었고 그녀를 그리워했던 스가씨는 자신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하늘로 올라간 호다카는 미지의 세계를 직접 보게 되고 그곳에서 날씨 대신 히나를 선택하면서 다시 날씨는 미친듯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호다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도쿄로 오게 됩니다. 이때 스가씨는 믿기힘든 많은 일들을 극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계는 원래부터 미쳐있었고 지금 이런것도 다 원래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호다카와 히나는 그들이 함께 있기 위해 세계를 바꿨다고 생각하고 결국 재회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는 우선 날씨와 하늘의 의미, 청소년과 어른의 대립, 그리고 히나와 세계에서의 선택에 관해 해석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하늘을 미지의 생명체로 설정하면서 날씨 자체를 하늘의 기분이라고 설정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절대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 히나와 세계에서의 선택에서 '날씨 따위는 미쳐있어도 괜찮아, 히나와 함께이고 싶어' 라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잘못 때문에 날씨가 미쳐가고 있다는 점 자체를 의도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인간 자체를 얹혀사는 존재, 즉 임시 거처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가씨라는 어른의 표상과 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호다카는 소년의 상징 자체로 스스로 부딪히면서 깨지고 도전하는 존재로 결국 스가씨가 포기했던 소망을 이루어내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렇게 영화의 의미와 상징에 관한 해석을 마칩니다. 물론 이 영화는 의미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출적 요소도 뛰어닙니다. 우선 영화 내내 시종일관 내리는 비와 빗방울 표현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빛의 연출도 아름답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의 다음 작품으로는 아쉽다 라는 평이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의 이름은’ 보다 나은 점도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역시 신카이 마코토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참고문헌
사진 1: https://ko.wikipedia.org/w/index.php?curid=2592007
사진 2~9: 영화 내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