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은 도구인가 실재인가

역사학 2021년 07월 06일

우리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과거의 우리 조상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였는가?'라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언제부터 '한민족'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고대부터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혈연 부족이 '민족'으로 발전하였고, 현재까지 존속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기를 겪는 과정에서 외부의 적을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민족'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궁극적으로 사회학과 역사학의 핵심 문제, '민족은 도구인가 실재인가'로 귀결된다.

우선 민족주의의 관한 논쟁을 이해하기 전에 '민족'의 정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학계에 따르면 민족은 '언어, 지역, 혈연, 문화, 정치, 경제생활, 역사의 공동에 의하여 공고히 결합되고 그 기초 위에서 민족의식이 형성됨으로써 더욱 공고하게 결합된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공동체'를 의미한다. (신용하, 2006) 즉, 민족은 언어, 지역, 문화와, 경제와 같은 객관적 요소와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러한 '민족'에 대해 고정된 실재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허구에 불과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민족은 고정된 실재로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다

고전사회학자는 민족을 객관적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로 보았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어 오는 집단으로 보았다. 사회진화론으로 유명한 스펜서의 경우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가족'이 '씨족'으로, '씨족'이 '부족'으로, 마지막으로 '부족'이 하나의 '민족'으로 결합되는 3단계를 거쳐 '민족'이라는 사회적 실재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학의 아버지 뒤르켐은 '종족적 또는 역사적 이유로 동일한 법률 아래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자 하는 집단'을 민족으로 규정하였다. 현대에도 민족의 주관적인 요소, '민족의식'을 강조하지만 과거 민족의 객관적 실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사회학자로 앤서니 기든스가 있다.

이렇게 민족의 '실재'를 중시한 견해에 동조한 사람들 중 김구와 신채호와 같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식민지의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포함되어 있다. 김구는 본인의 저서 서에서 우리나라 민족이 혈연을 기반으로 영원히 존속하였으며 민족을 객관적 실재로 보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신채호의 경우 우리 민족의 공통적인 정체성을 고대에서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두 인물 공통적으로 '한민족'이 고대부터 내려온 '실체'로 이렇게 역사성을 지닌 '실체'로의 민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김구. 그는 '혈연 민족'을 내세우며 민족의 영원성을 강조하였다.

민족은 근대 민족주의 열풍 속에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이다

반면, 민족이 과거부터 전해 내려온 고정된 실체임을 거부하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저서 '상상의 공동체'로 유명한 사회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경우 '민족'은 근대 민족주의의 열풍 속에 만들어진 발명품으로, 실재하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민족주의의 흐름이 남미, 아시아로 이어지면서 중세적 시스템에 기반한 '제국'이 '민족'을 단위로 하는 영토 국가로 재편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민족국가들이 본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족'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앤더슨에게 '민족'은 과거에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사회 집단이 아니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몇 세기 밖에 정착하지 않았던 크리오욜들이 자신들의 민족 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20세기의 위대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그의 저서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민족'을 1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신화'이자 '허구'의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그에게 민족은 원초적이거나 불변의 사회적 실체가 아니며, 근대의 특정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민족이 민족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열풍 속 '민족'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홉스봄과 앤더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 또한 존재한다. 신용하 교수는 앤더슨이 민족을 민족주의의 '도구'로 보는 극단적 주관주의에 빠져 '객관적 실재'로서의 민족을 인식하지 못하는 편견에 빠짐을 지적하였으며, 역사적으로 볼때 '민족'은 사회적 실재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인간 집단'이기 때문에 앤더슨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보았다.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과 독립운동가 모두 '한민족'의 실재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다. (신용하, 2006)

결론: 나의 생각

한민족의 기원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추세이다. 사실 혈연 단위의 민족이 수세기를 걸치면서 지속되어왔다는 것은 입증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수많은 민족들이 한반도에 살았으며 서로 혼합, 동화되면서 현재의 민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혈연의 '순수성'을 기반으로 민족을 영원한 실체로 이해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세 이후, 고려 말기와 조선 전기로 이어지는 시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민족' 정체성이 만들어져 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몽골의 내정 간섭에서 벗어난 이후로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가 꽃을 피우고, 공통의 언어가 창제되는 등 '민족'의 객관적 요소가 자리잡히기 시작하였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중국, 일본과는 구분되는 '한민족'으로의 정체성은 강화되었다. 이렇게 독자적으로 확립된 '민족' 개념이 일제강점기에 항일의 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지,  일제강점기에 '민족' 개념이 후다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현재 '민족주의' 개념에 대한 논쟁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영원한 혈연 민족을 주장하는 이들은 난민 및 외국인을 우리 민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배타적인 민족 공동체 보호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다. '민족'을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며, 허구에 불과한 '민족'을 강조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세력 또한 있다. 극단적인 두 주장은 모두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을 간과하였다. '민족'에 대한 상식적인 논쟁의 출발점은 우리 역사를 정확하게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신용하. (2006). ‘민족’의 사회학적 설명과 ‘상상의 공동체론’ 비판. 한국사회학, 40(1), 32-58.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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