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태완이법? 사람 이름이 붙은 '네이밍 법안'

법학 2021년 12월 01일

법령의 이름은 대개 담겨 있는 내용을 명확하게 추론할 수 있게끔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처럼, 길기도 길고 내용도 구체적이다. 그렇기에 보통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남녀고용평등법'처럼 약칭으로 불리우곤 한다. 그런데, 개중에 눈에 띄는 특이한 이명이 붙은 법들이 있다. '윤창호법', '민식이법', '김영란법'··· 사람의 이름을 딴 '네이밍 법안'들이다. 본 칼럼에서는 사람 이름을 딴 이명이 붙는 네이밍 법안의 개념과 간단한 몇 가지 예시들, 그리고 네이밍 법안을 둘러싼 쟁점들을 다룬다.


누구의 이름이 붙는가?

특정 인물의 이름이 법안의 이명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법을 주도적으로 제안 혹은 추진한 이의 이름이 법안의 이름이 되는 경우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생각해볼 수 있다.

둘째, 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 즉 이 법을 적용하여 처벌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이 쓰이는 경우다.  조두순법(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전두환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법안 제정의 계기가 된 특정 사건의 피해자 또는 관련자 이름이 쓰이는 경우다. 발의되는 네이밍 법안의 대다수가 이런 형태이며,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들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다. 피해자의 이름을 붙인 경우로는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과 등이, 관련자의 이름을 붙인 경우로는 최진실법(친권자동부활 금지제. 최진실 씨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은 것이 아니라, 최진실 씨의 사망과 함께 친권을 포기한 그 남편에게 친권이 넘어간 것을 계기로 제정된 법안이다) 등이 있다.


김영란법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청탁금지법의 이명이다. 2011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공직 사회 기강 확립을 목표로 최초 제안, 2012년에 정식 발의하였으며, 2015년 제정되었다. 금품 수수 금지, 부정청탁 금지 및 외부강의 수수료 제한의 세 가지 내용을 골자로 하여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의 부정한 금품 수수를 막고 있는 법안이다.

김영란

태완이법

'태완이법'은 1999년 5월 발생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다. 당시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몹시 잔혹한 범죄가 발생했음에도 형벌권이 소멸하는 공소시효가 지나면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살인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2015년 8월부터 시행되었다.

태완이법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태완이 본인의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지만, 해당 법안의 시행 이후 장기미제사건 전담팀이 경찰청 공식 직제로 편성되고 오랜 시간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살인사건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져 많은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태완이법 시행 이후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 용인 교수부인 살인 사건 등 많은 사건이 해결된 바 있다.


네이밍 법안, 그 명과 암

20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총 약 2만 3천 건에 이른다. 수많은 법안의 홍수 속에서 이슈화를 통해 국회 통과를 위한 동력까지 얻어내려면, '이름'을 붙인 눈에 띄는 명칭을 붙여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시키는 것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법안 내용의 핵심을 이명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고, 큰 인지도가 집중되기에 정치인은 자신의 인지도를 함께 올리는 효과까지 있기에 앞으로도 네이밍 법안의 발의는 계속하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네이밍 법안에는 여러 가지 중요 쟁점들이 존재한다. 첫째는 특히 태완이법과 같이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법안의 경우, 그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권에서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피해자 본인과 그 가족(혹은 유가족)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안산 8세 여아 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조두순법'을 관련된 예시로 볼 수 있다. 최초에는 피해자의 가명에서 따온 '나영이법'으로 불리었으나, 피해자 가족이 원하지 않아 가해 범죄자의 이름을 딴 '조두순법'으로 정착된 바 있다. 이처럼 특정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붙인 네이밍 법안의 경우 그 명명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검토해 볼 필요성이 제시된다.

또한, 네이밍 법안은 인명을 직접 붙이다 보니 논의 과정에서 개인사가 부각되고 감정에 호소하는 면이 커 실질적인 내용 전달 및 적절한 논의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즉 '민식이법'이다.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이의 이름을 딴 법안으로 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 횡단보도 신호기 설치, 불법주차 금지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당시에는 아이를 애도하고 부모에 공감하는 여론의 압력이 몹시 컸기에 속전속결로 통과되었으나, 현재에 와서는 당시 국회가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아 과중 처벌, 위헌 소지 등 허점과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통과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민식이법의 개정을 주장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 청원이 3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안타까운 사건을 반복하지 않고자, 네이밍 법안을 통해 입법 필요성을 부각시켜 사안을 공론화하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말 좋은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도한 감정에의 호소가 아닌 차분하고 장기적인 토론이 필수적이다. 국회가 네이밍 법안의 명과 암을 인식하고,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그 이점만 잘 활용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1] 시사상식사전, 사람 이름을 딴 법안들 [Online]. Available: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667&docId=5713608&categoryId=43667

[2] 서울신문, (2020, May 27). 민식이법·구하라법… ‘네이밍 법안’ 어디까지 괜찮나 [Online]. Available: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527500202&wlog_tag3=naver

[3] 한경 정치, (2020, December 3). '구하라법'…죽은 사람 이름 법에 붙이는 거 그만하면 안되나요? [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 [Online]. Available: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12025090i

[4] 영남일보, (2021, March 23). [자유성] 사람 이름 딴 법 [Online]. Available: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10322010003244

그림 1. https://www.assembly.go.kr/assm/assembly/assdata/assdata03/bbs/bbsView.do?bbs_seq_n=32&bbs_cd_n=46&currentPage=0&search_key_n=&search_val_v=&cate_n=&dept_v=

그림 2. https://www.snua.or.kr/magazine?md=v&seqidx=8347

그림 3.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991

Cover Image. https://unsplash.com/photos/veNb0DDegzE

김하원

하나고등학교 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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