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외교상황과 교훈

정치학 2020년 12월 06일

서론

제 1차 대전의 책임은 특정 국가에 물을 수 없다. 강대국들은 너도나도 군비경쟁과 불안한 분위기의 형성에 일조했다. 유럽이 안보딜레마의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그렇게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전쟁 발발에 기여했고, 특히 독일과 러시아의 역할이 컸다.

  1. 독일

독일 통일에 따른 유럽의 불안감

통일된 독일이 그동안 겪었던 전쟁이라는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통일된 독일이 이를 위해 군사적 문제로 접근하거나, 비스마르크 이후의 독일 외교관들이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던 방식은 잘못되었다. 프레데릭 대왕의 프로이센이 대국 중 가장 약체였던 반면, 통일 직후 독일은 가장 강대국이 되었고, 따라서 이웃 국가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따라서 유럽 연합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외교 정책에 있어서 그들이 공격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독일은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그들의 안보딜레마를 가장 심화시켰다.

비스마르크의 해임과 세력균형의 실패

독일의 잘못된 외교정책은 비스마르크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스마르크는 그의 복잡한 동맹 체제를 이용하여 그의 많은 파트너들을 제지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그들이 독일의 힘을 과소평가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그러나 1890년, 젊은 카이저 윌리엄은 그렇게 우뚝 솟은 인물의 그늘에서 통치하기를 거부하면서 비스마르크를 해임했다.  카이저가 가장 원했던 것은 비스마르크와는 정반대로, 독일의 중요성, 특히 독일의 권력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었다. 그는 Weltpolitik 을 지향했던 것이다.

세력균형에 대한 독일의 위협

비스마르크는 힘의 균형이라는 전통을 넘어서려고 한 적이 없었지만, 그의 후임들은 세력균형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의 힘을 확대시킬수록 주변국의 불안감 또한 커져 독일에 반하는 유럽 평형체계에 내재된 보상적 연합과 무기 부문이 자극될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아가 독일 지도자들은 주변국들이 이미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국가였고, 패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독일와 동맹하기를 꺼려하는 것에 분개했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다른 국가를 압박해 동맹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역효과를 불러왔다.

2. 러시아

유럽의 전통적 위협, 러시아

전통적으로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는 독일이 아닌 러시아로 여겨졌다. 영국은 러시아가 이집트와 인도에 침투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독일 또한 러시아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촉발에도 기여했다. 러시아가 유럽을 위협할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거의 없었으나, 유럽의 모든 나라들은 군사준비에 몰두하며 위협과 반협박의 수단으로 대규모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의지관철을 위해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확장하는 것 같았다. 러시아는 1854년의 크림 전쟁, 1875–78년의 발칸 전쟁에서, 그리고 1904년의 러일 전쟁 이전까지 타협보다 항상 정복을 선호했다. 이는 특정 목표라기보다는 세력균형의 위협으로 해석되었다.

러시아의 상반된 두 정책결정 기구

러시아의 외교 정책이 이렇듯 잘못된 방향을 취한 것은, 그것이 두 개의 다른 기구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러시아의 외무부는 대법원의 부서로서, 서구를 지향하는 독립된 관리들에 운영되었다. 때문에 발칸반도의 독일관리들은 러시아는 유럽 연합의 맥락에서 실행되어야 할 정책을 가진 유럽 국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외무부는 러시아의 모든 확장선인 오스만 제국, 발칸, 극동지역에 대한 러시아 정책에 똑같이 독립적이고 책임이 있는 아시아부와 경쟁하고 있었다. 아시아부는 러시아를 유럽 연합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시아부는 유럽 국가들을 장애물로 취급했고, 일방적인 조약이나 유럽에 대한 언급 없이 시작된 전쟁 등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차르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러시아의 외교실패

러시아 정책 입안에서의 독재 체제 또한 일관성 있는 외교 정책에 걸림돌이 되었다. 차르와 소통할 수 있는 관료가 몇 없었고, 차르의 입맛에 맞는 외무장관만을 오래도록 유지했기에 다른 관점들을 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러시아의 외교정책을 결정할 때 유일한 의사결정권자였던 차르는 자주 자리에 없었고, 그의 정책은 종종 순간의 감정에 의해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부가 부채질한 민족주의적인 동요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의 맹점이 된 과도한 팽창

또한 아이러니한 것은, 어느 시점 이후 팽창주의가 더 이상 러시아의 힘을 증강시키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의 쇠퇴를 불러왔다는 것이었다. 1848년과 1914년 사이에 러시아는 그 어떤 주요 강대국보다도 훨씬 많은, 6개 이상의 식민지 전쟁 이외의 전쟁에 관여했다. 이러한 각각의 갈등에서 1849년 헝가리에 대한 개입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에 대한 재정적, 정치적 비용이 그 이득을 훨씬 초과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영토 확장과 함께 대국의 지위를 계속 확인했고, 필요하지도 않고 소화하지도 못하는 더 많은 땅을 갈망했다.

3. 영국

균형유지자

독일과 러시아가 이렇듯 매우 위험한 분위기를 전 유럽에 조성했기 때문에, 유럽의 평화는 19세기 내내  능숙하고 절제된 균형자 역할을 해 온 영국에 달려 있었다.

영국 외교의 세력균형 유지 기조와 그 위협

1890년까지 영국의 외교정책은 여전히 ‘위대한 고립’, ‘균형바퀴’라는 말로 설명되었으며, 그만큼 대륙에서의 세력균형 유지가 목적이었고 영국이 동맹에 관여하는 것은 선호되지 않았다. 그러나 1890년과 1914년 사이, Salisbury의 집권 시절 영국의 상대적 지위가 하락함에 따라 변화는 일어났다. 경제력은 이제 독일과 맞먹었으며, 러시아와 프랑스는 그들의 제국주의적 노력을 확장했고 거의 모든 곳에서 대영제국에 도전하고 있었다. 영국은 여전히 강대국이었지만 19세기 중반에 누렸던 지배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독일의 러시아-영국 관계 파악 실패와 재보험 조약의 갱신 거부

그러나 지정학적 현실이 영국을 고립에서 끌어내는 동안 독일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영국의 유럽과의 더 큰 관여를 향한 첫 번째 움직임은 제국주의 독일과의 보다 좋은 관계의 구축이었다. 러시아와 영국이 독일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확신한 독일의 정책 입안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협정의 성격을 파악하지도 않고, 심지어 러시아와 영국을 더욱 친밀히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두 나라와 동시에 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실패했다. 비스마르크를 해임한 황제 윌리엄 2세의 외교 행보는 비스마르크와 정반대되었다. 그들은 외교 정책을 최대한 단순, 투명하게 운영하려 했고,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으며, 재보험 조약을 영국과 동맹을 맺는 그들의 선호 진로에 장애물로 여겼다. 때문에 윌리엄 2세의 독일은 점진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킴으로써 지정학적 이해의 부족을 보여주었다. 복잡성은 독일의 위치와 역사에 내재되어 있었기에 단순한 정책은 독일의 많은 측면을 고려할 수 없었다. 비스마르크가 둘 다 잃지 않고 발칸의 위기를 고조시키지도 않으면거 20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공포와 러시아의 야망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러시아와의 조약과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이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재보험 조약의 폐지는 정확히 정반대의 상황을 가져왔다. 독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모험주의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재보험 조약의 만기에 따른 러시아의 불안

재보험 조약을 포기함으로써 독일이 오스트리아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잃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불안감을 증가시켰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의존은 발칸반도에 있는 오스트리아를 지지하려는 새로운 성향이라고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이전에는 결코 중요한 독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던 지역에서 러시아 목표의 장애물로 자리매김하자, 러시아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추구하던 프랑스와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이 재보험 조약을 갱신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던 대영제국과의 독일 식민지 협약에 의해, 러시아는 더욱 프랑스와의 관계를 강화하게 되었다. 런던은 아프리카 식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협정을 채택했고 독일은 이를 영독 동맹의 서막으로 간주했으며 러시아는 이를 영국의 3중 동맹에 첫발을 내딛는 것으로 해석했다. 러시아는, 그들과 역사적으로 더 친밀했던 독일과 전통적 적국인 영국 사이에서 조약이 맺어지자 삼국 동맹의 다른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대해 반응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프랑스와 러시아 이해관계의 일치

일단 독일이 오스트리아 편에 서게 되자, 프랑스와 러시아는 사실 목표가 서로 달랐음에도 둘 다 독일을 먼저 물리치거나 최소한 약화시키지 않고는 그들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기에 연합했다.

1894년, 러시아가 독일의 공격을 받거나, 또는 독일과 연합하여 오스트리아의 공격을 받을 경우 프랑스가 러시아를 돕기로 하는 군사협약이 체결되었다. 독일이 공격하거나, 독일이 이탈리아와 연합해 공격할 경우 러시아는 프랑스를 지원할 것이다. 이는 훗날 '운명의 동맹'(1891년 프랑스-러시아, 1894년 군사협약에 이은 1894년)이라 불리며 유럽 전쟁의 분수령이 됐다. 즉, 세력균형 운용을 위한 종말의 시작이었다.

균형의 조건은 3가지가 있었다.

1. 각 국가는 그 순간의 상황에 따라 다른 어떤 국가와도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18세기에는 이 조건이 지켜지면서 세력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다.

2. 고정된 동맹이 있지만, 균형자가 기존의 연합체들 중 어느 것도 지배적이 되지 않아야 했다. 이는 대영제국이 계속해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실상 양쪽으로부터 구애받고 있었던 프랑스-러시아 조약 이후의 상황이었다.

3. 경직된 동맹이 존재하고 균형자가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동맹의 응집력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주어진 문제에 있어서 타협이나 조정의 변화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조건들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을 때, 외교는 경직되게 변했다. 한쪽의 이득이 다른 한쪽의 손실로 간주되는 제로섬 게임으로 발전하고, 군비 경쟁과 고조되는 긴장이 불가피해졌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프랑스-러시아 동맹에 가입하여 1908년부터 삼국협상을 형성한 후를  말한다. 이 조건들이 순서대로 파괴되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삼국 협상의 결성 후 힘의 균형은 무너졌다. 타협술로서의 외교는 끝났으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독일의 영국과의 연합 실패

프랑스와 러시아가 연합해 독일에 맞서자, 독일은 영국과의 동맹을 희망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는 독일 지도부의 ‘전통적인 영국 외교정책과 자국 안보의 진정한 요구조건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었다. 영국에게 entente는 그저 ‘위대한 고립’을 유지한다는 기존 입장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독일은 대륙형 동맹을 주장했으나 영국은 여전히 고립을 추구했기 때문에, 빠르게 대륙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부상하던 독일과 관계한다면 그 고립의 기조가 깨질 것은 명백했다. 나아가 독일에게 영독동맹은 큰 필요성이 있지 않았다. 이미 영국이 적의 편을 들지 않는 한 어떤 예상 대륙의 적수나 그들의 조합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이 대영제국에 요청했어야 할 것은 동맹이 아니라 대륙전쟁에서의 중립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묻고, 영국이 원하지 않는 것(대영제국을 지키기 위한 은밀한 약속)을 제시함으로써 독일은 영국으로 하여금 그들이 사실상 세계 지배를 추구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만들었다.

독일 외교의 실패 이유 : 민족주의

독일의 지도부는 유럽 외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고 미숙했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 경영과 성장하는 전문직 계층은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독일 지도자들은 여론에 극도로 민감했고 민족주의적 압력 단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항상 정부를 더 강경한 노선, 더 많은 영토 확장, 더 많은 식민지, 더 강한 군대 또는 더 큰 해군으로 몰아붙였다. 그들은 정상적인 외교의 주고받기, 즉 독일의 외교적 양보를 굴욕으로 취급했다.

엇갈린 독일과 영국

독일은 고립된 영국을 상대로 독일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독일의 위상을 높일 것으로 생각했다. 영국에 필적하는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해군력을 영국의 해군력에 버금가게 키워야 했다. 독일의 해군력은 점점 성장했고, 유럽에서 가장 강한 육군을 보유한 나라가 해군까지 육성하기 시작하자 반대급부로 영국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오히려 영국이 독일과의 동맹을 원했지만, 독일 수상 뷜로는 영국의 동맹 제의를 뿌리친다. 그 배경에는 국제 정세에 관한 판단 보다는 국내 여론에 대한 지나친 의식이 있었다. 독일 하원에서 해군을 대규모로 육성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되기 직전이었는데, 영국과의 조약은 그 결의안의 정당성을 약화할 우려가 있었다. 또한, 독일 지도자들은 영국을 우군으로 둔다는 것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오스트리아와 같은 완전한 동맹만을 원했다. 둘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리고 독일의 성장에 놀란 영국은 독일과의 협상에 실패해 프랑스와 러시아와 손을 잡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

먼저 프랑스가 모로코의 독립을 위협하자, 모로코에서 많은 무역수지를 올리고 있던 독일은 모로코에 군사를 투입했다. 독일의 판단과는 다르게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미국은 전쟁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일을 도우려 하지 않았고, 독일의 식민지 팽창이 우려되었던 영국은 즉각 프랑스군에 지원군을 보냈다. 독일의 모로코 간섭은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적 동맹을 강력히 한 것이다.

영국와 러시아의 동맹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와 페르시아 지역에서 영국과의 충돌이 계속되며 영국과 식민지에 대한 공통된 합의의 필요성을 느꼈고, 영국은  독일을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1909년 영국 외무장관 그레이가 독일에 해군력 증강을 멈추면 영국도 독일의 팽창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했으나, 독일이 이를 무시하며 유럽은 오스트리아와 손잡은 독일과 삼국 협상으로 양분화되었다. 당시 삼국 협상은 이례적으로 영국이 대륙 국가들에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으며 상당히 강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각 세력의 강화되는 군사력

각 세력이 스스로를 지킬 방법은 오직 군사력의 확장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국가들은 전쟁을 최후의 외교적 수단이라고 판단, 전쟁의 개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협상국과 동맹국들은 이제 대놓고 군비경쟁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같은 슬라브족인 세르비아에 지원을 시작했고, 프랑스는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도 오스트리아가 발칸반도에서 세르비아에 밀리지 않도록 군사적 지원을 늘렸다. 모든 유럽 국가들은 혹여나 자신이 다른 나라들보다 발칸 국가에 지원을 덜 하면 발칸 국가들이 적 진영으로 넘어갈까 두려워 끝없이 군사적 지원을 퍼부었다. 독일은 여전히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독일이 강성해질수록 협상국의 동맹은 강화되었다.

결론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유럽의 상황은 냉전 시대의 세계정세와 같이 양극화의 정도가 극심했다. 하지만 전자의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러시아와 미국만이 전쟁을 시작할 힘이 있었고 그 힘을 그 누구와도 나누려 하지 않았던 냉전과는 다르게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에서는 누구든 개전할 수 있었고 동맹국끼리, 협상국끼리 서로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지도록 강요했다. 양 진영의 강력한 군사력은 어느 정도 발칸반도 등에서 전면적인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지만, 1913년 런던 회의 이후 동맹 선언들과 전쟁 의지를 내보이며, 강한 군사력은 오히려 위험을 더 증폭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하다. 국가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을 때, 지도자는 위협이 점점 앞으로 점점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제거할 것인지, 신중하게 지켜보면서 위협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외에도, 군사력을 감정적으로 남용하거나 과시하는 것을 경계하고, 끊임없이 적절한 외교 정책으로 국가의 존재 이유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1차 대전 직전의 유럽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모두가 호전적인 자세로 위험을 자초했다. 때문에 끔찍한 전쟁이 벌어졌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Henry Kissinger 의 저작 <Diplomacy> chapter 7. 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후, 필자의 생각을 더 담아낸 것이다.

김소은

하나고등학교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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